KEYS to Kingdom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이사야 64:1]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눅 4:18]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도서 4:12]
사역의 비전
저는 1968년 주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비전을 받았습니다. 나는 교회의 분열, 그리고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공격하는지 주님과 대화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른 아침 조찬 기도 모임을 가기 위해 FGBMFI (Full Gospel Businessman ’s Fellowship International) 운전을 하고 있던 중이였습니다. 14살였던 제 아들 데이빗은 차 안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가로등이 꺼지기 시작하는 이른 아침에, 갑자기 성령에서 특이한 것을 보여주기 시작하셨습니다. 성령님이 보여주기 시작한 것은 제가 태어나고 자란 켄터키 농장에서 자주 보았던 착유용 3각 의자였습니다.
의자는 차 앞유리를 통해 아주 부드럽게 떠내려왔습니다. 그러자 매우 힘이 세고 털이 많은 팔이 의자 다리를 잡아 부러뜨렸습니다. 다리가 없어지면서 나무다리에 새겨진 글씨를 읽을 수 있었는데, 그 글자는 “사랑” 이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또 다른 강한 팔이 의자의 다른 다리를 심하게 찢었습니다. 팔이 지나갈 때, “거룩“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마침내, 마지막 하나 남은 다리도 또 다른 강한 팔에 의해 격렬하게 제거되었고, 이 마지막 다리의 글자는 “권능“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습니다. 의자의 좌석 부분이 바닥에 떨어져 흔들거리며 자리 잡았을 때, 나무 의자 위에 쓰여진 글자들이 “교회“라는 단어를 새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미 반세기가 넘었지만 그 비전은 여전히 생생합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교회가 이처럼 무력해진것은 그리스도의 육체를 구성하는 균형 중 서로가 필요로 하는 사랑, 믿음, 단합 및 순종의 결여 때문이라는 것이 매우 분명해졌습니다. 우리 주께서는 우리에게 열한 번째 계명,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라는 새로운 계명을 주셨습니다.” (요한.13:34) 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은 성경에 명시된 기본적인 지침을 따르는데 매우 필요합니다. 바울은 또한 우리에게 엡4:11-16이의 지침을 주었습니다.
어떤 중대한 변화나 회복에 있어서는, 명확한 사명 선언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사명 안에서 사명의 비전이 실현 될 수 있는 원칙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사야 61 장의 예언을 인용하면서 그분의 사명, 그 중심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으로 사역을 시작했으며, 우리 주님은 그분이 교회를 세우실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계속해서 선지자들의 글을 인용하셨습니다.
더욱이, 오순절에 시작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건축에서 성령님 주신 기본 방향을 개선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일부 개혁자들은“Sola Scriptura”라는 믿음과 실천을 위해 성경이 지지하지 않는 것이 요구되어서는 안된다고 외쳤습니다. 이제는 기본 지시사항으로 돌아갈 때입니다.
대형 교회와 자아 중심적 집합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의 중심으로 삼는 단순함으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성경이 뒷받침할 수 있는 역사적 전통만을 포함하여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기본 신앙과 원시적인 사도적 교리를 통해 교회를 회복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신약성경의 이러한 사도적 가르침에서는 복음주의적이고 예배적이며 카리스마 넘치는 믿음,보석처럼 숨겨진 하나님의 사랑, 거룩함, 권능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초자연적 본성을 통해 교회의 연합을 가져와야 할 절대적인 필요가 있습니다.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엡 4:12)
각 줄기마다 제자들에게 줄 수 있는 영적 진리는 풍부하지만 제거되어야 할 우상도 많이 있습니다. 종교적이거나 영적인 것은 완전히 다른 관점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영광의 주님을 죽임 당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
함정:
초대 교회는 바빌론 (계17:18)과 라오디게아 (계3:14-19)의 함정에 대해 주님으로부터 경고를 받았습니다. 바빌론은 요한계시록의 ‘니콜라아티아인‘처럼, 바빌론은 자기 영광을 위해 악마적 왕국을 세우며 종교적 독재를 나타낸 부정적인 예입니다.
라오디게아는 인간의 영광을 위해 투표하는 교회인 민주적인“사람들의 목소리”의 한 예입니다. 주님께서는 좋은 씨를 해치지 않도록 조심하기 위해 밀과 가라지 (잡초)가 함께 자라는 것을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는 주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자신을 정결케 해야 합니다. . 즉“그의 아내가 스스로 준비 하였으므로”(계 19 : 7). 우리는“어린 양의 혼인 잔치”을 준비 할 수 있도록 이 마지막 때에 성령을 신뢰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초대 교회는 이러한 균형에 힘 입어 사랑과 거룩과 권능으로 성령을 통해 강력한 성공을 누렸습니다. 사랑으로 연합된 관계 속에서 지역 장로들의 통치는 성령의 인도를 통해 가능했습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예루살렘에 온 모든 사람이 치유되고 구원 받았습니다 (행 5 : 15-16). 장로들의 마음에는 항상 일차적인 연합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행동은 항상 연합에 있어 두번째로 중요합니다.
초대 교회의 장로들은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엡 4 : 11-16). 이 사람들은 연합에 관해 (요한 복음 17 : 20-26) 주님의 가르침에 대해 매우 진지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은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고 한 마음과 한 영을 가질 때 드러나지만, 이것조차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창 11 : 6). 이것은 중요합니다. 시간을 내어 성경을 읽고 그 결과를 묵상해 보세요.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항상 주님 앞에서 우리의 교리를 제단에 두어야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그분으로부터 교정 받고 더 많은 계시를 위해 이것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두운 유리를 통해 본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야합니다 (고전 13 장).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과 사랑으로 걸어 가야하며, 주의 종과 장로들이 그분의 크신 사랑과 자비로 모일 때 궁극적으로 진리이신 성령을 신뢰해야 합니다.